작업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

미술을 한다는 것은 자기 언어를 세운다. 물질을 이용해 새로운 물질을 만든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은 깊게 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은 계속 변한다. 더 깊거나 얕다는 것의 대비로 주제의식을 차등화하지 않는다.
재료와 방법에 대해서 자유롭게 상상하자.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이라던지 평면에 대한 탐구라던지 그런게 아니라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자.
많은 것들이 가능하다. 간결하게 만들자. 
오늘 생각한 것은 이 정도의 정리이다. 그런데 뭔가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기본 구조인 것 같다.

특히  
미술을 한다는 것은 자기 언어를 세운다.
물질을 이용해 새로운 물질을 만든다.
재료와 방법에 대해서 자유롭게 상상하자.

이 세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인데도 새삼스레 크게 느껴졌다.
이런 생각을 하고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앞으로는 어떤 것을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 되지 않을까 싶다. 그 고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자유롭게 상상한다면. 실타래의 끝은 어차피 한가닥 얇은 실이니까 그 실을 잡고 주욱 당기기만 하자.

물론 조금 더 풍성하게 읽힐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은 욕심은 있다. 하지만 나에게 지금 그정도의 힘이 있을까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고민을 안 할건 아니지만. 어제 잠을 별로 못자서 많이 피곤하다. 

인정하기 싫어

인정할 수가 없다. 내가 그저 그렇고 그런 인가들 중 하나라는 것이. 그게 정말 사실이냐. 응. 사실이야. 라고 생각은 하는데 정말 어디 마음 한구석엔 제발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있다. 과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좋은 일일까.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는 디딤돌일까. 아님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나 자신을 높게높게 치켜세우는 것이 오히려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길일까. 그것도 아님 그건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인간사에서 새롭지도 않은 범사에 지나지 않는 일일까.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요즘 귓가게 맴돌긴 하는데 사실 그것도 인정을 잘 못하겠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될까. 겸손에 불과한 것. 하아 포카리 스웨트는 시원해. 물론 냉장고에 넣어놨던 것을 마실때에만. 이온음료 중에 파워에이드보다 포카리 스웨트가 더 좋다. 맛이 약간 숭늉같아서. 라면중에는 음.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것들이 많다. 그 중에서 내가 잘 먹는 것은 김치라면, 진라면 매운맛 두가지 정도. 2순위는 참깨라면, 신라면 정도. 3순위는.. 편의점엔 1순위 2순위가 항상 있기 때문에 3순위를 찾는 일은 거의 없지만 너구리, 우육탕 정도. 

책을 샀다.

요즘 글자를 좀 가까이 하고 싶다는 욕심이 사라지질 않았다. 미루고 미루던 서점가기를 실행에 옮겨서 시집 1권과 소설 2권을 사왔다. 아직 소설 1권은 들추어보진 않았지만 나머지 두 권은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이름이 어느정도 알려진  작가들의 책은 실패가 드물다. 시집은 임솔아라는 시인의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이라는 제목으로 엮인 것인데, 너무 감각적이지기만 한 것도 아니면서, 마른 흙을 파먹는것 정서가 와닿았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잘 사라지질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딱히 어떤 노력을 하는것도 아니다. 노력을 하긴 해야 할텐데. 요즘의 생활은 즐겁고 별 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들춰보면 아주 커다란 구멍하나가 뻥 뚫려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그 깊은 구멍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글자를 가까이 하고 싶은 욕심으로 전환되 것이 아닐까. 웃고 있는 시간이 많다. 하지만 그만큼 울고 있는 시간이 너무 없다. 끈적끈적하고 불투명한 감정들이 그리웠다. 어느 웹툰에서는 죄의식을 즐기지 말자고 다짐하는 주인공이 나와서 맞아 맞아 이랬는데, 사실 난 그런 인간형은 아닌가 보다. 불신과 오만함이 밑에 깔려져 있어서 그런것 아닐까. 할머니를 걱정하지만 막상 할머니가 엉뚱한 일로 나에게 전화를 해대면 확 짜증이 솟구치는 철부지. 서점에서 할머니의 전화를 받고서 그 짜증이 책을 고르며 취해있던 나를 콘크리트 현실로 다시 소환시켜 주는 듯 했다. 그럼 그렇지. 난 이렇게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인간이었지 하면서.
올림픽에 나오는 컬링 선수들 중에 김은정이라는 사람의 눈빛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명하게 남았다. 그 집중력. 부럽다. 난 이런데. 하지만 이런 점에 있어선 나도 뭔가 더 나아가려고 노력을 해야하는 것 같다. 우울을 되씹는 것과는 별개이다. 어디에나 우울은 있고. 그 시간이 찾아오면 그 시간 나름대로 음미를 하면 될 것이다. 교회에 나가보고 있는데 오늘 처음으로 사역리라는 걸 배웠다. 아직도 뜻이 무엇인지 모른다. 교회라는 공간은 아직 나에겐 불신을 증폭시키는 장소이니만큼 쉽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겠다. 꼭 그래야 할 필요성이 있는것이 아니기도 하고. 그래도 3주를 연달아 출석했던 것에 대한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애인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 말고도 분명한 어떤 이유가 있다. 교회를 다니기만 한다고 해서 애인이 순순히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 외에 내가 주변 사람들한테 이야기했던 것은 교회 안에서 작동되는 믿음의 논리에 대한 궁금증과 세속적 세계 안에서 신을 믿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지에 대한 것. 둘 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스스로도 약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교회라는 장소보다 지금 출석하고 있는 그 곳에서 느껴지는 작은 편안함같은 것이다. 나이를 먹다보니 의도치 않게 생겨버린 넉살 덕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안의 사람들의 선함에서 느껴지는 이끌림 같은 것이 아닐까. 그 사람들도 교회 문 밖을 나섰을 때 어떤 표정으로 욕지거리를 씨부릴지는 몰라도 최소한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닌것 같다는 나의 감각적 판단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일요일날 할 일이 없기도 하고. 3주를 나갔지만 당연히 기도, 예배, 찬양, 그리스도 이런 낱말들이 낮설고 잘 와닿지는 않는다. 그런 점은 앞으로도 더 나아질런지 장담하긴 어렵다. 36년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낱말들이니 당연하다. 정말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의 정화가 이루어질까. 그 점이 궁금하기도 하다. 정작 어젯밤만 해도 나쁜 짓을 웃으며 처리해버린 나인데.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