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5월 21일 일지



   아주 오랜만에 드로잉을 했다. 며칠 전 동료에게 내가 했던 말이 부끄럽다. 자신감은 있되 오만은 금물. 

11 건조실

영남지방에 비가 많이 내렸다. 샌프란시스코 주의 타니시티에도 비가 많이 내렸다. 영남지방의 한수씨와 타니시티의 케비는 떨어지는 빗방울을 촛점없이 쳐다보며 생각했다. '나아가야 할텐데' 그들은 둘 다 자식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정남이와 헤리이다. 둘은 서로를 사랑한다. 둘은 지금 일본에 있다. 일본에서 과자를 배운다. 과자를 배우기 전에는 문어찜을 배웠다. 문어찜을 배우기 전에는 차를 배웠다. 차를 배우기 전에는 정남이는 말을 배웠고, 헤리는 다코야끼를 배웠다. 그 둘이 만난 것은 차를 배우면서였다. 가만히 앉아서 차를 따라 마시는 것이 그렇게 평화로운 일인줄은 둘 다 몰랐다고 한다. 매일같이 차를 마셨지만 둘은 서로의 언어를 잘 몰랐기에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집을 얻고 같이 살게 되었다. 방이 두개 딸린 집이었지만 하나의 방에서 같이 잠을 자고 하나는 비워두었다. 비워둔 방은 창문을 열어놓아서 항상 새로운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집은 현대식 양옥이었지만 조그마했다. 일본의 모든 것들이 다른 나라들보다 조금씩 작았다. 작았지만 불편하지 않았다. 약간 더 나사를 조인 듯 했다. 정남이는 그런 작은 집이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서는 너무 큰 집에 살았다. 방이 다섯개였지만 혼자 살았다. 친구들이 놀러왔던 다음 날에만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환기를 하는 것은 여자친구였던 애연이의 담당이었다. 애연이는 정남이보다 두 살이 더 많았다. 예쁘게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자신은 예쁘다는 말은 밑도 끝도 없기에 그런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그녀에게 남자는 부족함이 없었다. 헤어지면 금방 누군가가 생겼다. 자신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누가 정해져 놓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그런 패턴으로 살아왔으며 서른 살이 될 때까지 혼자 였던 기간은 다 합쳐서 기껏해야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두명을 한꺼번에 만난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런 식의 연애가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남을 만나기 전에 만났던 남자는 경우라는 남자였다. 이 남자와는 4년 5개월을 만났고, 부모님들도 서로의 존재를 알았으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결혼 이야기가 슬슬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애연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경우는 트럭에 치였다. 애연은 경우의 장례식장에서 봤던 경우의 부모님을 잊지 못한다. 부모님은 애연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손이 아닌 그보다 더 강한 것에 맞은 듯 놀랄만큼 많이 돌아가버린 애연의 목과 목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전에 미친듯이 흔들어댄 두 어깨가 토끼 귀처럼 쫑긋 올라붙었다. 애연의 눈물이 슬픔의 눈물인지 놀람의 눈물인지 자신도 몰랐다. 경우의 장례식에 애연의 자리는 없었다. 그녀는 오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 생각을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장례식 뒤로 애연은 말을 잃었다.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경우는 그녀의 직장에서 전화상담을 할 때 뿐이었다. 전화통 너머로 들려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끔 한 사람처럼 들려왔다. 한 사람이 목소리를 계속 바꾸며 자신을 놀려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남자만 만나왔고, 별다른 직업적 능력이 없었다. 거울을 보면서 눈이 조금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자기 눈을 한참동안 들여다 보다가 이제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힘들었지만 그 뒤 정남이를 만나고 나서 조금씩 활력을 찾아갔다. 예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갖추게 되었다...

건조실

요 며칠 바다 밑바닥에서 살짝 떠 있는 상태로 숨을 쉬며 살고 있다. 주변을 둘러봐도 딱히 인사를 나눌 만한 것이 없다. 오늘 조금 다리를 흔들었더니 몸 전체가 조금 더 두둥실 떠올랐다. 열심히 살자라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이젠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는 포기가 빠른 인간이 되었다. 동전 뒤집듯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외형은 같되 안에는 다른 양각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양각으로 그려진 얼굴로 나는 피시시 웃는다.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는지 기억이 안나는 친구를 다시 만났는데 여전히 재수없다고 생각했고, 절대로 믿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친구라고 부르다니 대단한다. 친구라는 외형 안에 새겨져 있는 수많은 유형의 양각들. 몇 주정도 전부터 글이 좀 쓰고 싶었다. 뭐라도 좀 써서 머릿속의 안개를 조금이나마 걷어내고 싶었다. 일단 그냥 쓰면 된다. 일단 그냥 그리면 된다. 포기가 빠른 인간도 다시 근성있는 인간으로 재탄생 할 수 있을 것인가. 난 인생을 너무 우습게 본다.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너무 가벼이 여긴다. 나는 그러지 못하면서. 내가 만약 그 사람들만큼 했다면 나도 그만큼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쉽게 깔본다. 그러니 세상에 감동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세상에 별로 감동받을 만한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감동을 나에게 전해주는 것이라면 진중함이다. 사람들이 진중해질 때 나는 감동 받는다. 예전같으면 진중한 가벼움이라고 말을 적어놓고 진중하다는 것에 대한 조롱을 바로 날려서 순간이라도 흔들렸을 나의 마음을 다시 건조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싫다. 반대로 되묻기에는 지쳐버렸다. 삶을 살아간다는 감각은 구체성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렇지 못하다면 삶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공기가 되어버릴 것이다. 몸을 의탁할 것도 만져볼 것도 대화할 것도 다 사라져버리고 유리벽 뒤의 숨으로만 보여서 서려있는 김으로만 삶을 추측해버리다가 종을 땡땡땡 울려버릴 것 같다. 포기가 빠른 것을 고치기에 좋은 약은 두려움인 것일까. 아님 즐거움인 것일까. 
내일, 그러니까 월요일 BMW 모터라드 인천으로 면접을 보러 간다. 써플에서는 결국 연락이 없었다. 안 돼면 안 됐다 돼면 됐다. 연락이 와야지 나도 다음 행동을 취할 수 있을텐데. 주지 않아서 나도 한동안 주춤거리다가 죽어도 하기 실은 알바자리들을 조금 더 알아보다가 결국에는 다시 한번 오토바이 쪽으로 알아보았다. 지금 합격한 곳은 충무로 쪽의 센터 한군데. 나머지는 나의 이력서를 열람했지만 연락이 없다. 연락이 온 곳은 BMW 한 군데. 충무로 쪽 센터는 내가 연락을 해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근무조건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다. 9시부터 8시까지라니. 아무리 마음을 먹고 먹어도 받아들이기 힘든 근무시간이다.. 돈이라도 많이 주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다. 맥도날드의 두배로 일하고 같은 월급을 받는 수준이니.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차라리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는데 그럼 사실 마음이 편해지긴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관성 때문일까. 아님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일까. 좋아한다. 라는 것을 아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다. 나는 요즘 그림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것 같다. 어느 그림을 봐도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미술에 대해서 조금 질려버린 듯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놓을 수가 없다. 그것이 관성이건 뭐건 간에. 아직은 그럴 수가 없다. 그것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글을 적으니 조금 머리가 개운해지는 것 같다. 흐릿했던 생각들이 한 줄 한 줄 엮여져 나온다. 좋다. 더 쓰고 싶지만 이만 잘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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