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02 20 일지

120층짜리 빌딩의 옥상에 불을 붙여놓고서 생일 축하노래를 불렀어. 패티김 노래가 적당했겠지만 사실 그녀의 노래들을 잘 몰라. 결국 내가 부른것은 나비를 부르는 노래. 바람이 많이 불면 빌딩도 휜대. 신기하지. 다음날 티비에서 그 빌딩이 다 타버렸다는 뉴스가 나오더라. 엄마가 죽은지 얼마나 되었더라. 난 아직도 엄마를 가끔 생각해. 자주는 아니고 길거리의 엄마들을 볼 때 가끔 생각하는 정도. 죽고나서 엄마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내가 모르는 것처럼 엄마는 내가 이렇게 뚱뚱해진 것을 모르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엄마는 내가 말랐다는 것을 좋아하셨거든. 넌 밥통이 참 작구나. 이러면서 밥솥을 끌어가시곤 했지. 엄마, 그랬던 엄마는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실까. 내가 이렇게 밥통이 큰 아이였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놀라워하실지. 난 가끔 나의 모습을 티비에서 확인 해. 몸의 무게가 내 생에서 이렇게 중요한 관념이 될 줄은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그게 내가 사랑받는 비법이었으니까. 알고 있으니 나는 실천을 할 수 있었지. 엄마가 언제 죽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내가 엄마의 눈을 피하지 않고 응시했을 때였는지, 배에 가위가 들어갔을 때였는지, 너무나 아파하시면서 뒹굴다가 계단에서 굴러 내려갔던 때였는지, 쓰러진 엄마의 눈을 피하지 않고 응시했을 때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질 않지만 나는 엄마가 이미 서서히 죽어왔고, 그 죽음의 끄트머리 즈음에 나를 만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러니 별로 죄책감은 들지 않아. 오늘도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다. 오늘은 어느 빌딩에 올라가볼까. 올라갈 빌딩들을 고르는 기준은 이름이야. 모든 빌딩들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마치 사람처럼. 갑자기 짜증이 난다. 브라 와이어가 너무 날 조여. 풀러버리고 싶지만 엄마가 없으니 이것 참. 빨리 빌딩을 골라야 할 것 같아. 인터넷을 켜고 빌딩들을 검색해. 오늘은 짜증이 많이 나는 날이니 너무 멀지 않은 곳의 빌딩으로 올라가야지. 빌딩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출발을 예고해. 빌딩은 언제나 나를 환대해. 나에게는 할머니가 있어. 아주 작은 할머니가 침대 매트리스 용수철 사이를 뛰어다니지. 그 할머니의 이름은 몰라. 그렇다고 궁금한 적도 없어. 그냥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땐 할머니라고 부르면 돼. 할머니도 그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시지. 할머니는 가끔 모습을 바꿔. 가위라던가. 성냥이라던가로. 하지만 그건 완전히 할머니의 의지야. 내가 원할 때 변할 수 있는거냐고 물어봤을 때 살짝 웃으셨는데 그 웃음이 이상하게 무섭더라. 그 뒤론 그런 얘기 절대 안해. 아 빨리 빌딩을 오르고 싶다. 네모낳고 검은 빌딩 위로 흐르는 도시의 수면을 핥아버리고 싶다. 씹어먹고 싶지만 그럼 피가 나겠지. 피가 나는건 너무 귀찮은 일이야. 세상사는 귀찮은 일들의 연쇄작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중에서도 피가 난다는 건 가장 귀찮은 일들 중 하나에 속해. 가장이란 최고로 그렇다는 것인데, 그런 말을 써야하는 일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불려지는 것은 조금 의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수로 그 일을 지칭하는 건 왠지 속이 좁아보여서 싫어. 난 밥통도 참 거대한데 말이야. 나랑 안 어울리잖아. 좁다는 것은. 이미 난 좁은 방에 살고 있는걸. 좁은 방의 거대한 여자. 그게 나야. 할머니가 나를 부른다. 이만 안녕

2015.11.14-2015.12.19, [왜곡상], 공간 사일삼 ```` 발표


* 사진 김익현
* 이미지 수정 및 배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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