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1의 기록 건조실

일상적인 질문이 이상하게 대답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아까 사장님이 끝나고 뭐해요? 물어봤는데 우물쭈물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했다. 사장님은 그런 나를 보고 쉬겠지 뭐. 이렇게 그냥 넘어갔는데 내내 그게 마음에 걸린다. 너무 잘 대답하고 싶어서도 있거니와 아무 계획이 없어서이기도 하거니와 생각하고 있는 몇가지 계획을 구구절절히 설명하기도 어려운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정확한 것이 너무 잘 대답하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 때문일것이다. 아무 계획이 없으면 없다고 단답형으로 말하기는 너무 차갑고, 그렇다고 구구절절 설명하기는 너무 지루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며 흥미를 끌 수 있는 것일까를 생각하다가 타이밍을 놓쳐 버린다. 이 타이밍이 맞질 않는 사람들과는 더이상 친해질 수가 없다. 그저 추임새나 던져보며 낄낄대는 정도로 밖에는. 그래서 그런지 일 끝나고나니 마음이 불편하다. 하긴 뭐 일 끝나고 나서 그런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거의 매일이 그렇다. 사실은.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일 하는 동안이나 그림을 그릴때에도 어딘가 정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집중하지 못하고, 떠돈다. 아마 그래서 정비 일도 실력이 빠르게 늘지 않는 것같다. 열심히 하는데, 실은 열심히 하지 않는다. 미친다는 말은 너무 과장됐으니, 쓰지는 말자. 
오늘 일은 거의 컴퓨터를 만지기만 한 것 같다. 오전에 CB1100 엔진가드 장착하고, 할리 1200c 엔진오일 간 것 말고는 거의 정비일이 아니었다. 대기실 컴퓨터에 프린터를 설치하고, 인터넷을 다시 연결했다. 포토샵도 깔았으며, raw파일 컨버터도 깔았다. 컨버터는 아직 작동을 하지 않아서 그것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지만 그건 그리 급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키보드 바이러스를 잡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못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방법들을 다 찾아서 해봤는데 안 됐다. 이제 마지막 한 가지 방법만 남았는데 그건 회사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어서 해결하지 못하고 내일 시도해 보아야 한다. 조금 귀찮지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포스팅을 할 수가 없다. 포스팅을 할 수가 없다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하나가 줄어든다. 그나마 몇 개 없건만.
정비일은 재미는 있는데 잘 늘지 않는다. 이유는 아까 써놓은 것 때문인것 같다. 이유를 알고 있지만 답답하다. 그래도 조금씩은 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정말 너무 더디다. 기껏 정직원 계약의 관문까지 통과했건만 이 길이 과연 내게 맞는 길인가 스스로 의심을 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도 먼저 때려치진 말자고 계속 다짐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오랜만에. 사일삼 공간 공사가 완료된 후로 가고 싶어진다. 내 방에 짐은 아직 덜 정리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 공간을 다 사용하진 않으니까. 나중에 큰 그림을 그리게 되거나 어떤 작업이건간에 좀 더 큰 스케일이 된다면 정리를 해야겠지. 어제 취미가에 가서 유리케이스에 대한 세미나(?) 를 들었다. 유리의 속성은 '보여주기는 하지만 만지는건 허락하지 못한다.' '평면과 곡면, 투명과 반사' '유리는 미적재료로서의 잠재력이 크지 않다.'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거기엔 내가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다 모아놓은 것 같다. c만 빼고. 인사라도 나눈 것은 s밖에 없지만. 어색했다. 너무 어색해서 세미나가 끝나고 나가는 도중에 내가 앉은 의자를 정리하려다가 넘어트리고 말았다. 그 의자에 어떤 남자가 걸려서 넘어질 뻔 했지만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다. 아마 넘어졌다면 더욱 더 어색해졌을 것이다. 나 혼자서. 
일상적인 질문이 언제부터 이렇게 대답하기 어려워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서서히 그렇게 된 것 같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려고 하는 버릇 때문에. 좀 더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고, 좀 더 정확하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에. 그런데 막상 입밖으로 튀어나오게 되는것은 철지난 파리떼들의 합창이다. 
우리 사장님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유쾌하고 에너제틱하며 거만하지 않다. 다만 가끔 너무 마초스러운 발언을 철학인양 이야기하는 것 빼고는 괜찮다. 그 점도 그리 심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내가 회사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손님 가운데 있다. 몇 명을 꼽을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회사원이면서 뮤지션이다. 성격이 비비 꼬여서 여자들과 유약한 사람들을 경멸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 없다. 내가 증오하는 유형 중 하나이다. 흉터들을 보면 나는 비행기 조종사는 못 되겠구나.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난다. 비율로 따지자면 7:3: 정도가 되려나. 신체적인 한계 때문에 못하는 일도 있지만, 사회적 지위나 계급에 의해 스스로를 봉인시킨 일도 많다. 지위랄 것도 없지만 알게 모르게 체면같은 것이 생겨버린 것 같다.
두드리면 열린다는데, 아직 안 열리는 걸 보니 내가 두드리지 않았거나 안에 아무도 없나 보다. 두려움에 대한 나의 심상은 유년기의  꿈 속에서부터 너무도 확실하게 깨달았다. 누군가를 때리지 못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 사람을 때리지 못한다. 그 사람의 코 앞에서 나의 심장이 멈춰버려서 시간도 같이 멈춰버리고 나는 땀을 흘린다. 결국 나는 그 누구도 때리지 못했다. 마음속에는 그 사람을 패 죽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말이다.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물단지 건조실

오물단지 오물단지 넙죽넙죽 받아먹는 오물단지라네. 자존심도 자존감도 없는 오물단지라네. 
영화를 보고 감동을 하고, 내 삶을 살면 형편이 없네. 그립다는 감정에 사람이 빠져서 말을 걸 수가 없네. 거짓말을 계속 해서 이빨은 썩고 폐가 썩었네.
상실한 적 없는 상실감이나 고독한 적 없는 고독감이 자외선처럼 내리쐬어져서 초원 위를 걷는 탱크가 빵빵 터져나갈 때 오물단지는 외쳤네.
아-- 하고. 

튕겨오를 수 없는 시간 안에서 혹은 앞에서 뒤돌아 보았네. 바이올린을 켜는 소녀가 티비에서 울어. 버릇처럼 선율은 흘러가는데 소녀는 흐느끼며 웃어.
이제 그만해야지. 그만 해야지. 그 만 해야지. 목이 자꾸 굳는데 웃는데는 목이 필요없네. 이빨 사이로 찍하고 침을 뱉던 남자가 꽃을 주며 웃던 날에 그 안에 든 칼을 받아 입에 넣었지.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했다.
도로를 스치며 옆으로 누웠으며 헛기침 하는 사내를 본 후에 내 삶은 달라졌네. 형체를 잃었고 마음을 잃었어. 그런데 주소가 남아서 오래오래 살았어.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의 집을 도로로 나뉘었고, 밤마다 도로를 스치며 옆으로 누웠으며 도로의 꿈을 꾸었으며 일어나선 세수를 했다. 피부를 만지며 핏줄을 느끼는 간호사들의 하루가 기운차게 시작할 때 팅 하고 흐느끼던 소녀가 드디어 연주를 한다. 곡명은 없지만 아름다운 연주였다. 상식의 폭은 넓다. 말 못하는 사람은 주시한다. 손짓하는 말 못하는 사람을. 손가락의 움직임이 부드럽고 동공은 조여지지만 연주는 아직 끝나지 않아서 마침내 동공은 깨져버렸고, 손가락 연주는 햄버거처럼 착착착 탑을 이루어서 오로지 사진으로만 남아버렸다. 그랬어. 저랬어. 이랬어. 어땠어. 말들은 많지만 듣고 싶은 말은 없다. 누구 입에서 나오지 않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가 않다. 오물단지를 쪼개보면 오물은 겉치레가 단지가 깨끗한 속내를 들어낸다. 그 단지를 쪼개보면 단지의 단지가 되고. 무한히 단지는 늘어나서 결국 되버리는 건 단지.

실외기

2019년 8월은 2017년의 8월보다 조금 덜 더웠다. 이 나라의 많은 인간들이 2019년 5월동안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전염병이었다. 뉴스에서 그랬다. 내 주위 사람들도 많이 죽어버렸다. 모두 다 전염병이랬다. 그 병은 감기처럼 시작해서 그냥 죽어버렸다. 몇 년전 유행했던 조류독감보다 훨씬 더 고통은 덜했지만 치료약이 없었다. 전염병이라는 사람이 생명의 스위치를 탁 하고 꺼버리는 것처럼 일순간에 정지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타인들과의 접촉을 상당히 꺼려했고 국가적으로도 최소한의 활동들만을 제외하곤 모두 각자의 집에서 격리되어 지내는 것을 의무화하였다. 집 밖으로 나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마다 우주에 나가기 위해 입는 옷들처럼 새하얀 방역복을 입은 공무원들에게 신분을 확인하고 몸 전체를 소독해야만 했다. 소독도 역시 흰색 가건물에서 이루어졌다. 문을 들어가기 전부터 눈을 감은 상태에서 소독이 이루어졌기에 안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른다. 가끔 우발적으로 눈을 떠버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예 고글을 하고 들어가도록 하였다. 고글의 양 쪽 유리에는 흰색으로 코팅이 되어 있었기에 눈을 뜬다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쪽에서 보는 흰색은 그림자때문에 약간 더러워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버린 것이 2019년 8월의 더위가 한층 나아진것에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맞다. 직접적인 원인은 에어컨의 사용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었다. 죽어버린 사람들의 수에 반비례하여 에어컨의 사용은 줄어들었다. 그 
뿐이 아니다. 실제로는 에어컨이 있어도 틀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전염병이 공기에 의해 균을 옮긴다는 뉴스의 속보가 뜬 뒤 부터였다. 에어컨이 돌지 않으니 실외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도 없어졌다. 그만큼 거리의 공기를 데우던 열기가 사라졌다. 사라져버린 것은 열기만이 아니었다. 물론 눈에 띄게 사라진 것은 거리의 사람들이었지만 그것을 제외하자면, 소음이 줄었다. 이것도 역시 실외기가 돌지 않으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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