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눈 건조실

쟤는 항상 어떤 눈으로 나를 처다보더라. 촛점은 아주 넓지만 또 또렷하기까지해서 내가 아니라 내가 서있는 풍경을 나로 보더라. 나의 손가락은 어떤 글자를 그려. 그 눈빛이 싫어. 그 싫은 눈빛으로 나를 좋아해주는것이 싫어. 발목이 추워서 발목을 뻗었어. 키가 조금 커져겠네. 느낌이겠지. 거짓없이 찌걱대는 장화가 걸어들어오면 깊은 잠수를 하자. 잠수를 하면 숨을 못 쉬니까. 죽겠지. 죽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 계속해서 죽는다는 것을 상상했었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지만. 졸려서 이만 나는 잠시 죽어야겠다.

변한다. 건조실

추석이 지났다. 집에서 집으로 이동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천천히 달리고 싶다가도 빨리 달리고 싶었다. 뚜렷한 이유없이 마음은 계속 바뀌었다. 어떤 날은 일상적인 것도 신비롭게 다가오는 날이 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느끼고 싶다. 
하나의 명제를 정하면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하얗고 평평한 천에 얇고 날카로운 것을 수직으로 꽂아서 손목을 돌려 천천히 돌렸을 때 드러나는 주름을 만들고 싶다. 세상을 일그러트리고 싶다. 날카로운 하나의 명제가 필요하다. 그 명제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 모든 것에 대한 명제는 안 될 것이다. 무엇인가에 관한 명제이어야 한다. 이 마음도 변하려나. 내가 지금까지 써온 것들을 한데 모아서 나를 분석하고 싶다. 물론 그러진 않을 것이지만. 어차피 내가 지금 쓰는것도 내가 그동안 써왔던 것에 편재될 것이니까 굳이 그것을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관심있는 것은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자면, 가족, 여자, 남자, 차이의 극복, 살인마,.. 차이의 극복 마음에 든다. 차이의 극복.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까. 그것이 미술작품으로 극복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극복은 행동에 의해 결정된다. 미술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극복된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야. 이런 건 미술로써 접근이 되지 않는다. 미술은 응집된 이야기. 결정체같은 것. 맞나. 미술은 하나의 형식. 내가 미술을 읽는 방식이 나의 미술이 될 것이다. 미술은 보여주는 것. 1차적 덩어리가 2차적 덩어리로 재구성되는 것. 김정태 작가가 만든 것은 내가 생각하던 회화의 방향과 비슷한 지점이었다. 눈을 만드는 것.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는 눈. 그리고 환경의 조성. 그 사람은 실제하는 환경을 배재할 수 있는 vr을 구성했다. 그럼으로써 부피감을 완전한 시각물질로 전환시키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바라진 않는다. 그건 무언가 중요한 것을 초월해 버린것이다. 땀과 털의 감각을. 무엇인가에 관해 작업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가졌다 해도 쉽게 변했다. 그 흐름을 통제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통제할수록 생겨나는 밀도감이 있지 않나. 뭐 그렇기도 하지. 아마 몇가지 명제가 있다면 명제가 회전하면서 주름과 함께 팽팽함이 발생하겠지. 그 평평한 면이 소재가 될 것인데, 그 소재를 세계 전체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일테고, 거기에 대입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세계 전체가 될 것이다. 불완전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을 질서있게 정렬 결합 시켜야 한다. 하아. 근데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것은 너무 역겨운 말인것 같애. 그냥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냥 하면 또 안 된다. 정말 안 되는 걸까. 아. 이런 생각이 너무 지겹다. 

2017.09.21의 기록 건조실

일상적인 질문이 이상하게 대답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아까 사장님이 끝나고 뭐해요? 물어봤는데 우물쭈물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했다. 사장님은 그런 나를 보고 쉬겠지 뭐. 이렇게 그냥 넘어갔는데 내내 그게 마음에 걸린다. 너무 잘 대답하고 싶어서도 있거니와 아무 계획이 없어서이기도 하거니와 생각하고 있는 몇가지 계획을 구구절절히 설명하기도 어려운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정확한 것이 너무 잘 대답하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 때문일것이다. 아무 계획이 없으면 없다고 단답형으로 말하기는 너무 차갑고, 그렇다고 구구절절 설명하기는 너무 지루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며 흥미를 끌 수 있는 것일까를 생각하다가 타이밍을 놓쳐 버린다. 이 타이밍이 맞질 않는 사람들과는 더이상 친해질 수가 없다. 그저 추임새나 던져보며 낄낄대는 정도로 밖에는. 그래서 그런지 일 끝나고나니 마음이 불편하다. 하긴 뭐 일 끝나고 나서 그런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거의 매일이 그렇다. 사실은.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일 하는 동안이나 그림을 그릴때에도 어딘가 정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집중하지 못하고, 떠돈다. 아마 그래서 정비 일도 실력이 빠르게 늘지 않는 것같다. 열심히 하는데, 실은 열심히 하지 않는다. 미친다는 말은 너무 과장됐으니, 쓰지는 말자. 
오늘 일은 거의 컴퓨터를 만지기만 한 것 같다. 오전에 CB1100 엔진가드 장착하고, 할리 1200c 엔진오일 간 것 말고는 거의 정비일이 아니었다. 대기실 컴퓨터에 프린터를 설치하고, 인터넷을 다시 연결했다. 포토샵도 깔았으며, raw파일 컨버터도 깔았다. 컨버터는 아직 작동을 하지 않아서 그것도 뭔가 해야 할 것 같지만 그건 그리 급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키보드 바이러스를 잡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못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방법들을 다 찾아서 해봤는데 안 됐다. 이제 마지막 한 가지 방법만 남았는데 그건 회사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어서 해결하지 못하고 내일 시도해 보아야 한다. 조금 귀찮지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포스팅을 할 수가 없다. 포스팅을 할 수가 없다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하나가 줄어든다. 그나마 몇 개 없건만.
정비일은 재미는 있는데 잘 늘지 않는다. 이유는 아까 써놓은 것 때문인것 같다. 이유를 알고 있지만 답답하다. 그래도 조금씩은 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정말 너무 더디다. 기껏 정직원 계약의 관문까지 통과했건만 이 길이 과연 내게 맞는 길인가 스스로 의심을 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도 먼저 때려치진 말자고 계속 다짐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오랜만에. 사일삼 공간 공사가 완료된 후로 가고 싶어진다. 내 방에 짐은 아직 덜 정리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 공간을 다 사용하진 않으니까. 나중에 큰 그림을 그리게 되거나 어떤 작업이건간에 좀 더 큰 스케일이 된다면 정리를 해야겠지. 어제 취미가에 가서 유리케이스에 대한 세미나(?) 를 들었다. 유리의 속성은 '보여주기는 하지만 만지는건 허락하지 못한다.' '평면과 곡면, 투명과 반사' '유리는 미적재료로서의 잠재력이 크지 않다.'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거기엔 내가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다 모아놓은 것 같다. c만 빼고. 인사라도 나눈 것은 s밖에 없지만. 어색했다. 너무 어색해서 세미나가 끝나고 나가는 도중에 내가 앉은 의자를 정리하려다가 넘어트리고 말았다. 그 의자에 어떤 남자가 걸려서 넘어질 뻔 했지만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다. 아마 넘어졌다면 더욱 더 어색해졌을 것이다. 나 혼자서. 
일상적인 질문이 언제부터 이렇게 대답하기 어려워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서서히 그렇게 된 것 같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려고 하는 버릇 때문에. 좀 더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고, 좀 더 정확하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에. 그런데 막상 입밖으로 튀어나오게 되는것은 철지난 파리떼들의 합창이다. 
우리 사장님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유쾌하고 에너제틱하며 거만하지 않다. 다만 가끔 너무 마초스러운 발언을 철학인양 이야기하는 것 빼고는 괜찮다. 그 점도 그리 심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내가 회사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손님 가운데 있다. 몇 명을 꼽을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회사원이면서 뮤지션이다. 성격이 비비 꼬여서 여자들과 유약한 사람들을 경멸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 없다. 내가 증오하는 유형 중 하나이다. 흉터들을 보면 나는 비행기 조종사는 못 되겠구나.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난다. 비율로 따지자면 7:3: 정도가 되려나. 신체적인 한계 때문에 못하는 일도 있지만, 사회적 지위나 계급에 의해 스스로를 봉인시킨 일도 많다. 지위랄 것도 없지만 알게 모르게 체면같은 것이 생겨버린 것 같다.
두드리면 열린다는데, 아직 안 열리는 걸 보니 내가 두드리지 않았거나 안에 아무도 없나 보다. 두려움에 대한 나의 심상은 유년기의  꿈 속에서부터 너무도 확실하게 깨달았다. 누군가를 때리지 못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 사람을 때리지 못한다. 그 사람의 코 앞에서 나의 심장이 멈춰버려서 시간도 같이 멈춰버리고 나는 땀을 흘린다. 결국 나는 그 누구도 때리지 못했다. 마음속에는 그 사람을 패 죽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말이다.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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